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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스 반 데어 로에의 세상을 바꾼 철과 유리의 건축

by riarch 2024. 7. 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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격변하는 시대의 미스반 데어 로에의 삶

 미스 반 데어 로에(이후 미스로 칭함)는 근대건축을 이끈 대표적인 건축가로 르코르뷔지에, 프랭크 로이드 라이트와 함께 근대건축의 3대 거장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미스는 독일에서 태어났으며 1,2차 세계대전으로 인해 격변하는 시대에 활동했던 건축가입니다. 어린 시절 미스는 석공인 아버지의 작업장에서 돌을 친근하게 접했다고 합니다. 이후 성인이 되어 브루노 파울의 인테리어 사무실, 피터 베렌스의 사무소에서 건축의 경력을 쌓으며 건축가의 길을 걷게 되었습니다. 특별히 건축교육을 받은 것은 아니었지만 재능이 뛰어나 독립하여 자신만의 건축을 시작할 수 있었고, 이후에는 바우하우스 교장을 맡으며 교육자로서도 활동을 시작하였습니다. 미스가 교장을 맡아 운영하던 당시 바우하우스는 나치정권의 희생양이 되어 미스의 노력에도 결국 문을 닫게 되었고, 이후 미국의 일리노이 공과대학의 전신인 시카고 아머 공과대학의 건축학부 학장을 맡으며 미국에서 활발한 활동을 하게 되었습니다.

 

철과 유리의 미를 창시한 미스반데어 로에

 미스는 철과 유리의 사용으로 건축 역사의 패러다임을 바꾼 인물로 잘 알려져 있습니다. 미스가 활동하던 당시에는 1차 세계대전 이후 장식을 덧붙이는 역사적인 건축물에 대한 비판이 활발하였고, 산업화 시대와 함께 맞물리면서 새로운 건축양식들이 활발하게 생겨나는 시대였습니다. 미스도 사회적인 배경에 따라 그만의 건축적인 양식을 성립하고자 하였습니다.

 미스는 모든 장식을 배제하고 단순함과 명확성을 추구하는 건축을 계속해서 시도하였는데, 그의 건축 개념은 “less is more(적은 것이 풍부한 것이다)” 라는 미스의 말에도 잘 나타납니다. 산업화가 진행되면서 철과 유리라는 재료의 생산이 가능해 졌고, 이 두 재료는 건물에 불필요한 장식을 배제하고 최소한의 것만 남기고자 했던 미스의 건축 개념을 효과적으로 반영 할 수 있는 재료였습니다. 이런 시대적 배경 속에서 철과 유리라는 재료는 미스의 건축 개념이 만나 건축역사에 길이 남을 작품들로 탄생하게 되었습니다.

 철과 유리를 사용함으로서 미스는 현대 빌딩의 프로토타입을 만들어 냈습니다. 1921년 베를린의 고층빌딩 공모전에서 미스는 프리드리히 스트라세 빌딩 스케치를 제안하였는데, 외피 전체가 유리로 되어있는 마천루 스케치였습니다. 현대 빌딩과 흡사한 이 스케치는 당시 조적식 구조에 머물러 있던 중, 고층 오피스 빌딩 건축 세계에 충격을 주었습니다. 너무 혁신적이었기 때문에 실현되지 못한 이 스케치는 후에 시그램 빌딩으로 구현되며, 이 빌딩은 현대까지도 고층 건축물의 표본이 되고 있습니다. 바우하우스의 건축 스타일이 잘 드러나는 질서정연한 시그램빌딩의 입면은 금속과 유리라는 가벼운 느낌의 재료와 만나면서 빛을 발합니다. 브론즈 색상의 유리를 사용 하는 등 재료의 섬세한 계획들과, H형강의 멀리언 등 디테일이 날렵함을 더하면서 새로운 형태의 고층건물을 탄생시켰습니다.

 

간결함 속의 풍부한 공간

 미스 건물의 평면은 마치 선으로 이루어진 예술작품처럼 보입니다. 유기적으로 흐르고 연결되는 공간을 만들고자 했던 미스의 의도가 반영되었기 때문입니다. 그는 형태는 기능을 따른다는 바우하우스의 생각과는 다소 차이를 보였는데, 건물이 세워지면 사용하는 용도는 때에 따라 바뀔 수 있지만 그 형태는 바뀌지 않고 남아있으므로 꼭 기능을 따를 필요는 없다고 생각하였습니다. 따라서 그는 건물의 기능보다는 건물을 이루고 있는 비어 있는 공간 자체에 주목합니다.

1923년 시골벽돌집의 평면에서부터 공간에 대한 의도가 드러납니다. 사각의 형태로 공간을 구획하는 것이 아니라 열리고 닫힌 벽체로서 내부 공간을 자연스럽게 연결하고자 하는 의도가 공간에 반영됩니다.

 이러한 미스의 공간 개념과 재료에 대한 탐구는 바르셀로나 파빌리온에서 절정을 보여줍니다. 바르셀로나 파빌리온은 1929년 바르셀로나 국제박람회 독일관으로서 최초로 선보여졌습니다. 박람회가 마무리되면서 함께 철거되었다가 건축사적 가치를 인정받아 1978년에 다시 지어졌습니다. 수평으로 뻗어진 지붕과 그를 받치는 기둥, 공간을 구분해주는 벽체, 크게 3가지 요소들로 건물은 이루어져 있습니다. 건물에서 본질만을 남기고 모든 것을 들어내고자 하였던 미스는 필요한 요소들만 남겼습니다. 이 요소들의 본질적인 가치만 남기자 정말 얇은 형태의 지붕과 기둥, 그리고 벽체가 남았습니다. 얇고 평평한 지붕은 자 모양 금속의 날렵한 기둥으로 받쳐져 있고, 벽체 또한 공간의 질서를 만들어주는 본질적인 역할만을 남기고 그 외적인 것은 모두 제외시켜 아주 얇은 형태로 구현되었습니다. 얇은 형태를 표현하기 위해 선택한 각 요소들의 재료와 그 재료를 다루는 디테일들 또한 인상적입니다. 그중에서도 다양한 디자인의 고급 석재들이 유독 인상적인데, 어린 시절 석공의 아버지의 영향을 받지 않았을까 생각이듭니다. “다루는 재료를 완전히 이해할 때까지 어떠한 디자인도 불가능하다.”라고 말한 미스의 가치관이 잘 드러나는 지점입니다.

 극도로 섬세하게 계획된 요소들로 흐르는 공간, 확장되는 공간을 추구했던 미스의 가치관이 공간으로 구현됩니다. 바르셀로나 파빌리온에서도 특정 공간을 벽으로 구획하지 않았습니다. 벽들은 그저 일부를 가려주고, 일부는 열어주며, 방향을 제시해 주는 역할을 합니다. 벽들이 만든 공간의 질서를 따라 자연스럽게 흐르다보면 내외부의 풍경을 자연스럽게 감상할 수 있습니다. 넓게 뻗은 처마는 내부이기도 하고 외부이기도 한 반 외부적인 공간의 느낌을 주어 자연스럽게 공간으로 들어서게 되며, 벽체 뒤편으로 궁금증을 자아내는 공간들은 자연스럽게 발걸음을 옮기도록 만들어줍니다. 바르셀로나 파빌리온는 미스가 고민했던 공간을 다양한 재료와 디테일로서 집약적으로 구현해 낸 공간으로서 건축은 하나의 언어다. 당신이 매우 훌륭한 건축을 할 수 있다면 시인이 될 수 있다.”는 미스의 말이 떠오르는 공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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