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교 졸업식이 다가오는 시즌입니다. 건축학과 후배님들도 한창 취업 준비로 바쁜 나날을 보내고 계시겠지요. 최근 건설 경기 침체로 인해 설계 시장의 취업 문턱이 높아져 고민이 깊을 줄로 압니다. 저 역시 이 치열한 시장에서 9년째 버티고 있는 현직 건축사로서, 밤새 포트폴리오를 다듬으며 불안해할 후배님들에게 작게나마 도움이 되고자 이 글을 씁니다.
단순히 '대형' vs '아뜰리에'가 아닙니다 제가 처음 설계사무소에 입사할 때만 해도 저는 업계의 생리를 잘 몰랐습니다. 그저 막연하게 '대형 설계사무소'와 '아뜰리에(소규모 작가 사무소)' 두 가지로만 나뉜다고 생각했죠. 디자인 욕심이 있고 일을 빨리 배우려면 무조건 아뜰리에로 가야 한다고 믿었기에, 대형사로의 지원은 고려조차 하지 않았던 기억이 납니다.
하지만 10년 가까이 실무를 하며 깨달은 점은, 회사의 규모보다 더 중요한 것은 '그 회사가 주로 다루는 프로젝트의 성격'이라는 것입니다. 유명한 회사들은 그들의 철학이 명확하지만, 국내에는 잘 알려지지 않은 수많은 설계사무소가 존재합니다. 오늘은 제가 경험한 바를 토대로, 주력 프로젝트에 따른 설계사무소의 성격과 장단점을 정리해 드리겠습니다.
1. 중소형 민간건축물 위주 (주로 아뜰리에)
한줄 요약: 디자인 자유도는 높지만, 수주 불안정과 낮은 설계비가 현실

주택, 근린생활시설, 종교건축, 오피스 등 개인 건축주의 의뢰를 받아 진행하는 사무소들입니다. 흔히 우리가 '건축가'를 떠올릴 때 생각하는 영역입니다.
- 장점
- 디자인 주도권: 건축주의 취향과 설계자의 철학을 깊이 있게 반영할 수 있습니다. 설계사무소의 인지도와 개인의 의지에 따라 디자인을 깊이 있게 할 수 있으며 소위 '작품'이라 불리는 멋진 건물도 만들어 볼 수 있습니다 .
- 업무 관여도: 설계부터 시공 마무리까지 건축사가 깊이 관여하므로, 디자인 의도를 구현할 수 있는 경우가 비교적 많습니다.
- 단점
- 수주 불안정성: 경기에 매우 민감합니다. 건축주의 자금 사정으로 프로젝트가 중단되거나, 설계비 지급이 지연(혹은 미지급)되는 일이 발생하기도 합니다.
- 낮은 설계 단가: 디자인의 퀄리티나 노력보다는 '평당 얼마' 식의 면적 기준 설계비 책정 관행이 여전합니다.
- 업무 강도: 회사를 유지하기 위해 적은 인원으로 다수의 프로젝트를 동시에 수행해야 하므로, 야근 등 체력적인 부담이 클 수 있습니다.
2. 공공건축물 위주 (현상설계/공모전)

한줄 요약: 설계비는 안정적이나, 치열한 경쟁과 시공 퀄리티의 한계 존재
국가, 지자체, 공기업 등 공공 발주처의 프로젝트를 수행합니다. 일정 규모 이상은 법적으로 '설계공모(현상설계)'를 통해 설계자를 선정합니다.
- 장점
- 안정적인 설계비: 민간에 비해 단위 면적당 단가가 높고, 대가 기준이 명확합니다. 민간건축물에 비해 인증, 심의 등 업무절차가 복잡하여 설계단가가 확연하게 높은 편이라고 볼 수는 없지만, 무엇보다 발주처 예산이 확보된 상태이므로 설계비 체불 걱정은 거의 없습니다.
- 프로세스의 투명성: 때때로 발주처의 사정으로 프로젝트가 중단되는 경우가 생기기도 하지만, 수행한 범위까지의 비용은 보전받을 수 있습니다.
- 단점
- 치열한 경쟁: 당선되기 위해 수십, 수백 대 일의 경쟁률을 뚫어야 합니다. 1등이 아니면 의미가 없는 구조라 심적 부담이 큽니다.
- 디자인 변질: 공공의 건물이기 때문에 건축주가 한 사람이 아닙니다. 담당 공무원 뿐만아니라 건물을 이용하는 주민, 심의위원 등 다양한 사람들의 요청사항을 반영해야 합니다. 그 과정에서 초기 디자인이 수정되는 경우 종종 생깁니다.
- 시공 품질 리스크: 최저가 입찰 등으로 선정된 시공사가 맡는 경우가 많아, 설계 의도대로 디테일을 구현하기가 민간 프로젝트보다 어렵습니다. 최근에는 설계자가 시공단계에서도 디자인을 구현할 수 있도록 '설계의도구현' 제도가 생겼으나 각종 문서업무와 절차위주로 되어 있어 현실적인 한계가 여전합니다.
3. 개발사업 위주 (공동주택)

한줄 요약: 디자인보다는 수익성(사업성) 중심, 경기에 따른 '모 아니면 도'
시행사가 주도하는 아파트, 오피스텔 등 분양형 건축물을 다루는 분야입니다. 건축이라기보다는 부동산 개발의 성격이 짙습니다.
- 장점
- 큰 자금 흐름: 프로젝트 규모가 크고 자금 단위가 다릅니다. 성공적으로 진행될 경우 회사 차원의 수익이 큽니다.
- 표준화된 설계: 평면 구성이나 디자인에 일정한 공식이 있어, 규모 대비 설계 난이도가 상대적으로 덜 복잡할 수 있습니다.
- 단점
- 디자인 한계 : '최소 공사비로 최대 면적(수익)'을 뽑는 것이 지상 과제입니다. 따라서 실험적인 디자인보다는 법규 한도 내에서 용적률을 꽉 채우는 설계가 우선시됩니다.
- 경기 민감도 : 부동산 경기에 가장 직접적인 타격을 받습니다. 불경기에는 프로젝트 자체가 사라지거나 무기한 연기되는 경우가 허다합니다.
설계사무소 취업을 준비하는 후배님들, '어떤 건물'을 설계하고 싶은지, 그리고 '어떤 업무 환경'이 나에게 맞는지 고민해 보셨으면 합니다. 단순히 회사의 이름값만 쫓기보다 그 회사가 주로 하는 프로젝트가 나의 성향과 맞는지 잘 알아보는 것이 좋습니다. 설계 경기가 어렵지만, 그 안에서도 자신만의 길을 찾아가는 여러분을 진심으로 응원합니다.